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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감정 조절 훈련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뇌가 안정되는 이유

by 꼬미야~ 2025. 6. 27.

누군가에게 “그냥 기분이 이상해”라고 털어놓은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경험 있으신가요?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도, 감정을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멈추거나 속이 가라앉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단순히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뇌가 감정을 다르게 처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강력한 심리적, 생리적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서 감정 폭발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감정을 말로 풀어낼 때 우리 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왜 그 말 한마디가 우리를 안정시키는지를 뇌과학과 심리학적 시선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이제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가장 쉬운 방법, 바로 ‘말하는 것’의 비밀을 함께 들여다보시죠.

 

 

목차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뇌가 안정되는 이유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뇌가 안정되는 이유

 

1. 감정을 언어로 바꾸는 순간, 뇌에서 벌어지는 일

사람은 감정을 단순히 ‘느끼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뇌 부위가 바로 **좌측 전측 대상피질(ventrolateral prefrontal cortex)**입니다. 이 부위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려 할 때 활성화되며, 동시에 감정 중추인 **편도체(amygdala)**의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순간 뇌에서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하나는 감정을 정리하려는 인지적 활동이 일어나고, 다른 하나는 편도체가 과잉 반응하던 감정 신호를 줄이는 생리적 진정 반응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화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 뇌는 이 감정을 ‘외부화’하면서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반면 감정을 말하지 않고 억누르기만 하면, 편도체는 계속해서 경고 신호를 보내며 스트레스 반응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감정을 숨기는 사람은 오히려 심장 박동이 높아지고, 근육이 긴장하며, 뇌 속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분비되게 되는 것이죠.

결국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뇌에게 “이 감정을 내가 인식하고 있어, 그리고 다룰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행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뇌는 위기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신체는 다시 안정 상태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2. 감정의 이름을 붙이면 통제가 쉬워진다

뇌는 구체적인 언어를 더 잘 처리합니다. 따라서 “막 답답해”보다는 “나는 지금 무시당했다고 느껴서 속상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강한 안정 효과를 줍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뇌는 그 감정을 하나의 ‘정보’로 분류하고, 반응을 조절할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감정 명명(Affect Labeling)**이라고 부르며, 이는 심리학뿐 아니라 뇌과학에서도 잘 알려진 안정화 전략입니다. UCLA의 심리학자 매튜 리버만(Matthew Lieberman)은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연구를 통해 이 과정을 시각화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감정적인 이미지를 보고 단순히 감정을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편도체의 활동이 줄어들고 전전두엽의 활성도가 높아졌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 말은 곧, 감정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 뇌의 감정 제어 시스템을 스스로 작동시키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슬퍼”라고 인지하는 것과 “난 그냥 이상해”라고 얼버무리는 것 사이에는 뇌 반응에서 큰 차이가 생깁니다. 전자는 감정을 구조화하고 다루는 신호이고, 후자는 여전히 뇌가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미해결 상태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하면 편해진다”고들 말합니다. 이 흔한 말은 과학적으로도 정확합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감정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고, 질서 있는 감정은 통제가 가능한 감정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통제 가능한 감정은 뇌와 몸을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는 첫걸음이 됩니다.

 

 

3.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필요한 ‘감정 언어 훈련’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단순한 언어 능력이 아니라, 뇌의 감정 조절 능력과 직결된 사회적 생존 도구입니다. 아이들은 전전두엽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감정을 통제하기보다는 폭발시키기 쉽습니다. 이때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자주 해주면, 뇌의 정서 회로가 점점 정돈되고 성숙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있다면 “왜 이렇게 짜증을 내니?”라고 말하기보다 “지금 무언가가 속상했구나. 어떤 기분인지 말해줄 수 있어?”라고 물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전측 대상피질과 전전두엽이 서서히 활성화되고, 감정은 조금씩 가라앉게 됩니다. 아이는 ‘감정은 말해도 괜찮은 것’이라는 인식을 뇌에 새기게 되는 것이죠.

어른에게도 이 과정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많은 성인이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습관을 가졌지만, 이는 뇌의 스트레스 회로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감정 폭발의 빈도를 높일 뿐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고 나누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더 강하고, 대인관계에서의 공감 능력도 높습니다.

특히 감정을 글로 써보는 일기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감정을 언어화하는 행위는 말이든 글이든 상관없으며, 중요한 것은 뇌가 그 감정을 구조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는 감정은 뇌 안에서 ‘위험 신호’로 남지만, 말해버린 감정은 ‘처리된 정보’로 바뀝니다. 이 차이가 바로 감정 표현이 우리를 구원하는 이유입니다.

 

 

4. 감정을 말하면 감정에서 자유로워진다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감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자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뇌는 감정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받을 때 비로소 반응을 멈춥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이유를 모르는 불안이나 짜증 속에 빠질 때, “나는 지금 왜 이런 기분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 뇌는 계속해서 그 감정을 배경에서 재생산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말로 꺼내는 순간, 뇌는 ‘그 감정은 이미 처리됐다’고 판단하고, 감정 회로의 과열을 멈춥니다. 이는 스트레스 관리뿐 아니라, 불면증, 우울, 분노 조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또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은 결국 삶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 감정을 다룰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성숙하고 단단한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약한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말하는 사람은 뇌를 정돈하고, 내면의 혼란을 해소하는 가장 강력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당신이 무심코 뱉은 “나 지금 좀 불안해”라는 말 한마디가, 사실은 뇌에게 전해진 “괜찮아, 네 감정은 안전해”라는 위로의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정리하자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행위는 뇌에서 감정 중추와 이성 중추를 연결하고, 편도체의 반응을 진정시키며, 자기 인식 능력을 키우는 뇌과학적 안정 전략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감정을 언어로 다루는 습관은 곧 감정을 다스리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말 한마디가 우리를 지치게도, 살리게도 하는 이유는 뇌가 그 언어를 통해 감정을 해석하고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마세요. 대신 감정을 말로 꺼내세요. 그 순간부터 당신의 뇌는 치유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