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SNS에서 ‘블랙헤드 짜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으, 징그러워” 하며 고개를 돌리지만, 어느새 다시 돌아가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혹은 다리에 붙은 상처, 낯선 벌레, 심지어는 영화 속 좀비 장면까지…
도무지 좋아할 이유가 없는데, 자꾸만 시선이 끌리는 그 묘한 감정. 왜 우리는 '혐오'를 느끼는 장면에 매력을 느낄까요?
사실 이것은 단순한 취향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의 본능적 회로와 호기심 체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징그러움에 끌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뇌가 진화적으로 만들어 낸 복잡하고 정교한 감정 반응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혐오스러운 것'을 왜 외면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까이 들여다보는지에 대해 뇌 과학과 심리학 관점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1. 혐오감은 생존을 위한 ‘경고등’
먼저 혐오(disgust)라는 감정의 본질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징그럽다’, ‘역겹다’, ‘멀리하고 싶다’는 감정은 단순히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뇌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 낸 방어 메커니즘입니다.
예를 들어 상한 음식, 피가 흐르는 상처, 구더기처럼 움직이는 벌레 등을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움찔하게 됩니다. 이건 뇌가 "위험할 수 있어, 가까이 가지 마!"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편도체와, 내장 반응을 처리하는 **섬엽(insular cortex)**은 혐오 반응에 깊이 관여합니다.
특히 섬엽은 구토 반사나 식욕 억제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진짜로 음식이 상했을 때 ‘입에 넣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즉, 혐오감은 불쾌한 감정이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생존 본능이라면 당연히 피해야 정상일 텐데, 왜 우리는 그런 장면을 자꾸 보게 되는 걸까요?
그 답은 뇌의 또 다른 회로, 호기심과 보상 체계에 있습니다.
2. ‘보고 싶지 않다’와 ‘더 보고 싶다’가 동시에 작동할 때
인간은 모순된 존재입니다.
"보기 싫어"라고 말하면서도, 자꾸만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이 본 반응까지 궁금해하곤 하죠.
바로 이 지점에서 뇌의 보상 시스템과 호기심 회로가 등장합니다.
혐오감은 피하려는 본능이지만, 동시에 뇌는 그것이 특별하고 예외적인 자극이라고 판단해 ‘주의’를 집중합니다.
이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측좌피질(nucleus accumbens)**과 도파민 시스템입니다.
이 영역은 우리가 무언가 새롭거나 충격적인 것을 봤을 때 "오, 이건 좀 다르네" 하며 보상 반응을 유도하는 회로입니다.
특히 혐오스러운 장면은 일상적 자극과 달라서 뇌의 ‘평소 패턴’을 깨뜨리는 효과를 줍니다.
결과적으로 뇌는 그것을 위험하면서도 ‘더 알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즉, 징그러운 장면을 본다고 해서 이상하거나 비정상인 게 아닙니다.
그건 뇌가 지금 **“여기에 중요한 정보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단순한 공포나 혐오의 감정이 아니라, 뇌가 생존과 학습을 동시에 시도하는 매우 복잡한 반응이죠.
3. ‘징그러움’은 뇌에게 자극적이고 중독적이다
혐오 영상, 피부 긁는 영상, 치아 치료 장면 같은 걸 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개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실제로 뇌에서 도파민이 미세하게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도파민은 보통 보상, 기대, 중독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로, 우리가 ‘새로운 자극’을 받을 때 반응합니다.
혐오스러운 영상은 자극이 강하고 예상 밖이기 때문에, 뇌는 잠깐 동안 높은 집중 상태와 감각의 깨어 있음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일종의 ‘감각적 모험’처럼 작용해, 반복적으로 그 장르를 찾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원리를 활용해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인터넷에 굉장히 많습니다.
'몸 짜는 영상', '치과 치료', '심한 발톱 무좀 치료' 영상 등이 인기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혐오 자극을 통해 일종의 ‘정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짜증 나는 장면을 본 후 "으~ 징그러" 하면서 친구와 함께 웃는 것도, 그 감정을 사회적으로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즉, 징그러움은 단순히 피하고 끝낼 감정이 아니라, 자극-호기심-정화의 감정 사이클을 만들어주는 독특한 감정 자극입니다.
4. ‘징그러움에 끌리는 나’는 건강한 뇌의 반응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징그러운 것에 끌리는 건 뇌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단, 그 감정에 압도되거나 현실과 분리될 정도로 몰입한다면 조절이 필요하겠지요.
대부분의 경우, 그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무섭지만 자꾸 보고 싶은 공포 영화처럼, 혐오는 우리 뇌를 자극하는 특별한 감정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나는 왜 이런 걸 보고 있을까?’라며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이 징그러운 영상에 시선을 두는 이유는, 그 안에 호기심·학습·감정 해소라는 복합적 뇌 작용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뇌는 늘 생존과 배움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때론 혐오라는 자극적인 통로를 통해서라도요.
혹시 오늘도 우연히 스쳐간 징그러운 장면에 발길을 멈추셨다면, 그건 뇌가 잠시 “이건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순간일지 모릅니다.
그 반응은 자연스럽고도, 인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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