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감정을 기억하는 방식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장소에서 맡았던 향기, 오래전 들었던 음악이 순간 마음을 울리는 경험, 한 번쯤 있으셨을 겁니다. 왜 우리는 어떤 기억은 선명하게 떠올리고, 또 어떤 기억은 흐릿하게 사라져 버릴까요? 더 궁금한 건, 왜 감정이 강하게 실린 기억일수록 오래 남는 걸까요? 그 해답은 바로 우리 뇌 속의 ‘편도체’와 ‘해마’라는 두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감정과 기억을 조율하는 아주 중요한 조력자입니다. 오늘은 이 뇌 속 이야기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보려 합니다.
1. 감정을 감지하는 센서, 편도체
편도체는 뇌 속에서 양쪽 측두엽 깊은 곳에 각각 하나씩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이름처럼 아몬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특히 두려움, 불안, 분노와 같은 생존과 관련된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예를 들어 어두운 골목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그 순간 "무섭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얼어붙거나 가슴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편도체가 주변의 위협 신호를 빠르게 감지하고, 뇌 전체에 ‘비상!’을 알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편도체는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판단해 해마에게 "이건 꼭 기억해!"라고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편도체는 감정적인 사건에 깃든 우선순위 표시자 역할을 하며, 그 사건이 기억으로 남을지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2. 기억을 저장하는 사서, 해마
해마는 말 그대로 바닷말(해마)을 닮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해마는 우리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고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한 일, 즉 "에피소드 기억"을 다루는 데 아주 중요하죠.
예를 들어 "2020년에 가족 여행을 갔었지", "지난주에 친구랑 카페에서 이야기했지" 같은 기억은 모두 해마를 통해 저장된 것입니다. 해마는 단기적인 경험들을 필터링하여, 장기적으로 보존할 만한 정보만 선택해 장기기억으로 전환시켜 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해마가 모든 정보를 무조건 저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 특히 감정이 실린 정보일수록 더 우선적으로 저장되죠. 예를 들어, 길을 걷다 넘어졌지만 별일 없었다면 금세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넘어졌을 때 옆에 있던 누군가가 도와주면서 따뜻한 말을 건넸다면, 그 감정이 기억과 함께 저장되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3. 편도체와 해마, 감정과 기억의 듀엣
이처럼 감정(편도체)과 기억(해마)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협력합니다. 감정적으로 중요한 일이 발생하면, 편도체는 해마에 강력한 신호를 보냅니다. 그 신호는 해마에게 그 사건을 ‘우선 저장 항목’으로 등록하라는 뜻이죠. 이처럼 두 기관이 협력하면, 감정이 풍부했던 경험은 훨씬 강하고 오랫동안 남는 기억으로 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첫사랑과 눈을 마주쳤던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은 편도체를 자극합니다. 그 감정은 해마로 전해져, 그 장면이 마음속에 고이 저장됩니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나도 그때의 공기, 향기, 분위기까지 또렷하게 떠오르곤 하죠.
반대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던 순간이나 큰 사고를 당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강한 감정은 때때로 뇌에 충격을 주기도 하고, 해마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려 기억이 단편적으로 저장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고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4. 감정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삶을 이끈다
이처럼 감정이 실린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장면을 저장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선택을 할지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예전에 따뜻한 경험을 했던 사람과는 또 만나고 싶고, 불쾌한 경험이 있었던 장소는 다시 피하고 싶어 지죠.
즉, 우리의 감정과 기억은 단지 ‘과거를 떠올리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삶을 설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 감정적인 경험을 무조건 피하거나 무시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감정이란,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뇌에 각인시켜 주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또한 감정과 기억의 관계를 이해하면, 공부나 업무에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반복해서 외우기보다, 감정을 실어서 연결된 경험을 만들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무작정 암기하라고 하기보다,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맥락을 함께 제공하는 게 더 효과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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