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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학습능력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뇌의 해마와 장기기억 형성 원리

by 꼬미야~ 2025. 7. 5.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정보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정보는 쉽게 잊히지만, 어떤 정보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습니다. 이처럼 기억이 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원리는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시험공부, 업무 효율,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억력'의 핵심에는 '해마'라는 아주 특별한 뇌 구조가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해마가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고, 단기기억이 어떻게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지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뇌과학이 복잡하다고 느껴지셨다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실지도 모릅니다.

 

목차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뇌의 해마와 장기기억 형성 원리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뇌의 해마와 장기기억 형성 원리

 

 

 

1. 해마는 뇌 속의 ‘기억 공장’입니다

사람의 뇌는 약 86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해마(hippocampus)는 기억 형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위입니다. 해마는 좌우 측두엽 안쪽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말굽 모양을 하고 있어 그리스어 ‘해마(hippocampus, 바다 말)’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마는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닙니다. 새로운 경험, 대화, 감정 등을 뇌에 등록하는 ‘중계센터’ 같은 역할을 하죠.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은 우선 단기기억으로 저장됩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반복되거나 중요하게 인식되면 해마가 개입하여 그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킵니다.

재미있는 점은,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기관이 아니라 ‘전환’하는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장기기억은 뇌의 여러 부위에 분산되어 저장되지만, 그 분산을 조직화하고 길을 안내하는 것이 바로 해마입니다. 그래서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거의 형성할 수 없게 되며, 이를 **전향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라고 부릅니다.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이 겪는 기억 장애도 이 해마 손상에 따른 결과입니다.

 

 

2.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뀌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정보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지는 않습니다.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고, 필요한 정보만 저장하려는 습성을 가집니다. 뇌가 ‘이 정보는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반복’입니다. 단기기억이 여러 번 활성화되면 시냅스(신경세포 간 연결)가 강화되어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이 쉬워집니다. 이를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감정과의 연관성입니다. 해마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amygdala)와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감정적으로 강렬한 경험은 쉽게 기억으로 남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즐겁거나 슬펐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죠. 세 번째는 집중도입니다. 뇌가 완전히 몰입된 상태에서 경험한 정보는 해마에 의해 더욱 명확하게 인식되며, 이 역시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에 기여합니다.

즉, 뇌는 ‘중요하다고 느낀 정보’를 저장하려고 하며, 반복, 감정, 몰입이라는 조건들이 결합될 때 기억은 더 오래 남게 됩니다. 우리가 단순히 읽고 넘긴 책의 내용보다, 감동적으로 읽은 한 구절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3. 수면이 기억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이유

많은 분들이 공부할 때 잠을 줄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지만, 뇌는 오히려 충분한 수면을 통해 학습한 내용을 정리합니다. 수면 중 특히 렘(REM) 수면과 비렘(NREM) 수면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정리하고 강화하는 데 관여합니다. 비렘 수면은 뇌파가 느려지고 뇌가 신경회로를 재정비하는 시간입니다. 이때 해마에서 대뇌 피질로 기억이 이동되며, 중요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저장됩니다.

렘 수면은 꿈을 꾸는 단계로, 감정과 창의력이 관련된 기억들이 이 시기에 많이 처리됩니다. 감성적인 기억이 선명해지는 것도 이 과정 덕분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해마의 활동을 저해하여 새로운 기억 형성을 방해할 뿐 아니라 기존 기억의 유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오늘 배운 것을 내일도 기억하기 위해서는 숙면이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뇌는 자는 동안에도 ‘기억 정리’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좋은 학습자일수록 공부만큼 잠도 중요시 여긴다는 건 단순한 조언이 아닌 뇌과학적인 사실입니다.

 

4. 해마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상적 습관들

기억력 향상을 위해서는 해마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는 다른 장기보다 산소와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기관이기 때문에, 평소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관리가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식단(예: 고등어, 연어, 견과류)은 해마의 신경세포 기능을 도와주며,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뇌혈류를 증가시켜 해마의 활동을 촉진합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어 해마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명상이나 깊은 호흡, 가벼운 산책과 같은 스트레스 관리법은 기억력 유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덧붙여 새로운 것을 자주 배우고, 책을 읽거나 퍼즐을 푸는 등 뇌를 계속 자극하는 활동 역시 해마 기능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뇌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경가소성은 일생 동안 지속될 수 있으며, 해마 역시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기억력은 타고나는 능력이라기보다, 일상에서 충분히 가꿀 수 있는 '두뇌 습관'입니다.

 

해마는 기억의 핵심 관문이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부분의 경험이 해마를 통해 가공되어 저장됩니다. 단기기억은 해마의 도움을 받아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며, 이 과정은 반복, 감정, 집중, 수면, 그리고 생활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억력은 단지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과학적으로 설계된 환경 속에서 더욱 강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뇌에 대해 조금 더 알고, 해마를 위한 작은 습관을 실천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기억하고 계신 것도, 해마가 열심히 일한 덕분이니까요.